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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담벼락

오리우엘라 예거와 딤니팔 분단 썰 (2)




전세는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미라이예가 잔루카 파로 갈라질 법도 했건만 현재 가문에 남은 사람이 체사레뿐이고, 바로 그 사람이 처음부터 배반할 생각으로 모든 권위를 빼왔고, 동시에 그가 미라이예의 전통을 잇는 기사 중 기사라, 결국 미라이예 세력은 전부 체사레 수하로 들어옵니다. 체사레는 전술의 천재고 오리우엘라는 전략의 천재에요. 지금까지는 물량, 수량에서 지나치게 떨어졌던 전략의 천재, 즉 군대의 총 지휘자가 폭발적인 지원과 전투 지휘관을 얻은 셈이지요. 그들은 즉각 중부에서 무니시팔을 쫓아냅니다. 빗자루로 쓸어버리는 것보다 더 간단했어요. 다 쓸어내고도 해는 220년이었으니 덧붙일 말도 없겠지요.

그러나 체사레는 오리우엘라가 전투에 직접 나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자기랑 싸울 때는 외려 전장에 나오도록 도발했으면서, 아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지요. 오리우엘라는 그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것 때문에 좀 여러 번 싸웁니다. 그는 이제 정말 마지막 남은 왕족이신 분이 함부로 칼을 들고 전장 한 가운데로 나오면 안된다고 말하지요. 오리우엘라는 코웃음을 칩니다. 지금까지 그처럼 잘해왔고, 나는 당신에게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화살은 어쩌실 겁니까?' '그것들은 날 피해 가.' '적 진영 속에 갇히시면요?' '그럴 리 없다.' 체사레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논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지금까지는 그렇게 큰 열의를 두지 않던 그녀와의 잠자리에 돌연 엄청나게 정력(?)을 쏟아붓지요. 오리우엘라는 뭐야 하는 느낌으로 남편을 받아주는데, 이게 좀 지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일 정도니까요. 그렇게 두어달을 겪으니 웬만한 기사보다 건강한 그녀도 슬슬 진이 빠집니다. 그래서 그를 혼내려는데, 덜컥 임신 판정을 받지요

어어 하는 사이에 체사레는 왕손을 가지셨으니 쉬셔야 합니다 하는 둥으로 그녀를 잉그레에 몰아넣습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의 말에 수긍합니다. 일단은 제 후계자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잉그레에서 책상머리 일을 하고, 그는 그녀의 수족이 되어 전투에 나서게 됩니다. 그녀가 해산하기 전 그는 무니시팔을 동부 일부 지역까지 몰아넣습니다. 그는 그들의 예전 중심지였던 알로지아드 네바를 앗은 뒤 그곳의 지석을 가지고 잉그레로 옵니다. 오리우엘라가 해산할 때에 맞춰서요.

오리우엘라는 얼마나 건강한지 남편이 대기할 틈도 없이 아이를 낳습니다. 도착해서, 방금 들어가셨다는 말을 듣고, 숨을 돌이키기도 전에 아이가 나온 거에요. 산모는 건강하다 못해 팔팔합니다... 아이는 사내 아이였습니다. 오리우엘라는 아기를 몇 번 둥기둥기하다가 곧 자신이 더 관심 있는 쪽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체사레는 그녀에게 지석을 바치고 이쯤 되었으니 좀 쉬셔도 될 것이다, 저도 쉬겠다 말합니다만, 오리우엘라는 아이를 낳은 지 하루도 안되어 산책을 시작하더니 다음날에는 그간 손에서 떨어졌던 칼을 쥐고, 그 다음날에는 하루종일 칼을 손에 익혔다가도 저녁에 들어온 라르디슈 밀사와 밤새 논쟁을 벌이는 체력을 보여줍니다. 체사레는 이에 불만이 어마어마합니다. 전하께선 지금 후계를 보신 지 채 사흘도 안되셨다 말해도 영 듣지를 않아요. 사실 그가 보기에도 그녀는 원기왕성하기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아기가 신기한지 잘 놀아주기도 하고요. 어디 흠 잡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요. 그리고 아이는 솔직히 체사레를 꼭 빼다 박았습니다. 핏덩이인데도 이목구비가 아주 똑 닮았거든요.

그녀가 후계를 놓은 지 채 보름도 안되어 다시 전운이 감돕니다. 체사레는 이번에 다시 한 번 오금을 박습니다. 나오지 마십시오. 오리우엘라는 이제 아이도 있는데 왜 안되냐고 코웃음을 치고 그는 더 이상 반박거리가 궁색하게 되지요. 그래서 꺼림칙하게 그녀와 함께 최전선에 나갑니다. 이때가 221년 11월이고요.

오리우엘라는 무려 아이를 데리고 전장에 갑니다... 체사레는 그나마 좀 정상적으로 사고해 백 일도 안된 아이를 전장에 두는 것은 옳지 않은 일 같습니다 하지만 오리우엘라가 괜찮을 거야 하자마자 항의를 접습니다. 그리고 다시 무니시팔을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체사레는 또, 전장에서 건강하다 못해 갓 잡은 잉어처럼 팔팔한 제 여왕을 잉그레로 돌려보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과 똑같은 수법은 쓸 수가 없어요. 오리우엘라가 이번만큼은 안된다며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거부하면 체사레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그는 중간에 슬쩍 자식을(이름은 티살레마 오리우엘라 예거입니다. 당시 오리우엘라는 딤니파 바에 인수티 오리우엘라 산테카를로 라는 이름을 봉인해 둔 상태였거든요.) 잉그레로 보내 봅니다. 후계자의 안전을 위한다 어쩌고 해서요. 오리우엘라는 상당히 아쉬워 하지만,(하루의 휴식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뿐입니다. 

아무튼 그녀는 정력적으로 온갖 일을 헤치운 뒤 이제 아이가 아닌 체사레에게로 찾아듭니다. 그는 아무 흑심이 없는 척 몇 주 간은 그냥 그녀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사실 오리우엘라는 체사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위안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위안이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아무튼 영웅들이 아내에게 기대하는 그런 위안이랄까요? 오리우엘라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없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홀로 서 있을 때 쌓이는 스트레스까지 자연스레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체사레는 그녀 앞에서는 전장을 호령하는 지휘관도 살인자도 아니고 그냥 발마사지사 정도에요. 오리우엘라는 그 앞에서 세파에 지친 권력자 정도구요.

그는 양순하게 그녀를 다독여주다가 오리우엘라가 슬슬 넘어올 때 즈음 또 단박에 그녀를 안습니다. 사실 오리우엘라가 관계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임신을 하면 자기는 꼼짝없이 잉그레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은 거에요. 그녀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체사레가 계획적인 범행을 꾸미는 것을 유하게 넘기다가, 또 아이를 가집니다.. 그녀는 가기 싫다고 화를 내다가 제 풀에 지쳐 또 터덜터덜 잉그레로 떠납니다. 어차피 외교 행사가 있기도 했고.... 이런 자기 위안을 하면서요.

아무튼 그녀는 잉그레에 도착해 전쟁에 밀렸던 일들을 처리합니다. 이게 222년이지요. 내전은 곧 끝날 것 같아요. 무니시팔은 이제 껍데기만 남았어요. 뱃속에는 또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제 가장 충실한 신하이자 동반자이자 배우자인 체사레는 여느 때처럼 무료하게 잔당들을 소각해나가고 있고요. 봄이고, 날은 좋고, 톨레도백은 바라마지 않던 손주를 봤고, 드디어 캄비에서 알론조 캄비의 주인을 모신다며 자신에게 그들의 가장 귀중한 심장을 바쳤고, 그리고, 그녀는 급신을 전달 받습니다. 자신이 떠나자마자 체사레가 그로소에서 대패했다고 합니다.

오리우엘라는 그 소식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직접 그를 찾아가려 합니다만, 전령이 온 시기와 체사레가 잉그레로 돌아온 시기는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리우엘라는 돌아온 그를 보고 할 말을 잃습니다. 눈썹 위로 엄청난 상처가 나 있거든요. 눈을 피해간 것이, 좀 더 깊숙한 머리를 피해간 것이 신의 은총일 정도로요. 오리우엘라는 도대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왕국 최고의 기사에게 저런 상처를 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거의 처음으로, 바깥까지 분노를 철철 흘리며 무시무시하게 독대를 요청합니다. 오리우엘라는 그를 끌고 들어옵니다. 그는 문을 제대로 닫자마자 토해내듯 말합니다. '게외보르트입니다.'

오리우엘라는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끝냅니다. 체사레는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합니다. 평소처럼 비슷한 수의 군사와 싸우며, 회전으로 토끼몰이를 하려는 와중 갑자기 어마어마한 수의 적군이 더 투입되었다 합니다. 이틀 전 무니시팔의 지형을 염탐했을 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저만한 수가 나올 수 없는데 말이에요. 그 수는 지금까지 무니시팔 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체사레는 예기치 못한 엄청난 숫적 열세에 맞닥뜨리고선 즉각 전술의 방향을 승리가 아닌 생존으로 바꿨습니다. 도저히, 어디서 공수해왔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체사레는 가장 마지막에,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을 확보한 뒤 퇴각합니다. 군사는 육분지 일 정도만 살아남았고요. 체사레의 이마 상처는, 거의 끝의 끝에서 그가 기사단을 이끌고, 새로운 적군이 들어와 전멸당하다시피 한 우측으로 돌파할 때 생긴 상처랍니다. 다행히 그는 그 미친짓에서 살아남았고, 거의 열 명의 사지를 연달아 찢으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고해하도록 만듭니다. 그들은 웃으면서 말합니다. 비사 오필라, 우리는 그분들의 짐승이오. 체사레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그 방면을 도륙해버립니다만 그래봤자 소수입니다. 그는 이를 갈며 그곳에서 빠져나옵니다. 전령은 대패의 기미가 보일 때 이미 보내둔 거였어요. 게외보르트 관련 내용은 없지요. 그래서 그는 직접 달려 잉그레로 옵니다. 그리고 이처럼 무시무시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거에요.

오리우엘라는 우선 그를 한번 꽉 안아줍니다. 그가 얼마나 바짝 긴장해 있는지를 알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체사레는 뜨신 한숨을 토하며 역시 오리우엘라를 껴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엇이?' '패배를 사죄드립니다.' '불가항력이었지.' '저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게외보르트.' '예. 아무래도 그 화상이 외세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미친 게로구나.'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몰리던 시절에조차 외세의 도움은 단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었습니다. 외려 라르디슈가 왕과 귀족들의 내부 권력다툼으로 소란한 점, 게외보르트가 오늘내일 골골대는 노왕을 두고 형제끼리 암투가 대단했던 점 등을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요. 그 게외보르트의 소동이 일단락되자마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에게 생을 주듯 키스를 한 번 합니다. 그는 잠자코 그녀를 맞이하다, 참지 못하고 아예 상대를 잡아먹을듯 덤빕니다. 덩치 차가 덩치 차인지라 그녀는 거의 그에게 가둬져 키스를 받습니다. 그에게 꽉 감싸인 팔뚝과 턱이 아파올 지경이지요. 아무리 단련된 그녀라도 체사레에게 비할 바는 아니니까요.

사실 오리우엘라는 그 격렬함에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외려 약간의 만족감까지 느끼지요. 라파를 죽이기 전 그녀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정말 천 길 낭떠러지에서 만 근을 어깨 위에 진 모양이었지요. 그런데 오리우엘라는 그때도 혼자 버텼거든요. 그런데 체사레 이 사람은 홀로 전멸의 위기를 벗어난 단 한 번을 가지고 이렇게 확 무너져 자신을 원하는 겁니다. 항상 승리만 해 온 인생이라 자기는 절대 깔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들, 그런 체사레를 오리우엘라는 좋아했어요. 그러니 무너진 그에게 실망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상위라는 것을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깨닫지요. 강해보이지만 자신보다는 약합니다. 신중해보이지만 경험이 부족해요.

오리우엘라는 체사레의 키스를 받아줍니다. 그녀가 거부할 겨를도 없이 다음 단계까지 나아가려던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확 돌리며 평온으로 돌아가지요.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잖아요. 오리우엘라는 그를 붙잡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당신은 내게 기대도 된다.' '전하.' '내가 알아서 해.' 그는 입을 꾹 다뭅니다. '체사레. 네가 누구를 모시는지 보거라.' 그는 여전히 입을 꽉 다문 상태입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의 팔을 끌어당겨 자리에 앉혀요. 그는 큰 미루나무가 쓰러지듯 그녀 옆에 앉아서는, 상처가 새겨진 이마를 짚습니다. 침묵이 흐르죠. 

오리우엘라는 고개를 숙여서 잘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 봅니다. '체사레?' '예.' '무슨 생각을 하나?' '전하의 옥체에 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부끄럽습니다.' 그녀는 너털웃음을 터뜨립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사람이 돌연 너무 어려보여서요. 그녀는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갑니다. 체사레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전하. 위험합니다.' '내가? 아니면 당신이?' '둘 다요.' '그럼 오늘 명령은 당신이 수절하는 것으로 하지.' 그는 창 밖을 한 번 바라봅니다.

오리우엘라는 본격적으로 그의 품에 자리를 잡고 향후의 계획을 줄줄 말하기 시작합니다.(체격은 대충 오리우엘라가 164, 체사레는 188 정도입니다. 덩치는 외르타와 발렌 만큼 파격적으로 차이가 나진 않아요. 오리우엘라가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이라서요. 물론 그래도 신장 차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녀의 말에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선 저들의 다음 방향을 지켜본다. 우리를 공격하면 반격하면 된다. 가만히 앉아 우리의 뒷공작을 한다면 우리도 첩자를 통해 서부를 난장 놓으면 된다. 우리의 턱 밑에 있는 다른 외세들에게까지 손을 뻗으려는 기미를 보이면 선제 공격한다. 그리고 만일, 자치정부를 세울 시. 체사레는 오리우엘라를 안은 손에 힘을 더합니다. 그녀는 그의 품에 둥글게 누워서는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때는 내 어찌 할까.'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해 딤니팔을 배반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 '인간이 아닌듯 보입니다.' '나는 그것들의 목을 원한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게외보르트가 방해한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필연이다. 그 나라는 그라우뷘덴 심연 덕에 돈이 넘쳐나. 필시 무슨 악을 써서라도 우리를 동강내리라.' '전하께서 저희를 수호하십니다. 전하께선 잉그레이자, 캄비이자, 딤니팔이십니다. 딤니팔은 승리할 것입니다.' 오리우엘라는 미소 짓습니다.

그 뒤 석 달 간 그들은 잉그레에 앉아 추이를 지켜봅니다. 오리우엘라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무니시팔의 장남인 파비오 마레 카발리에 얀 무니시팔 딤니파 마레 카발리에 파비오 산테카를로로 개명합니다. 그 동생 역시 산테카를로의 성을 땁니다. 오리우엘라는 여전히 오리우엘라 예거입니다. 그 뒤 다시 두 달, 서 딤니팔이 개국됩니다. 그 왕의 이름은 라 딤니파 마레 카발리에 파비오 카모네 이보 산테카를로, 자칭 카모네라 1세입니다. 오리우엘라는 여전히 오리우엘라 예거입니다. 

그녀는 드디어 주변에서 전하도 즉위하시라는 압박을 받습니다만,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서 딤니팔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 내 앞에 버티고 있는 한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간들 왕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 영영 왕위를 가지지 못한다 해도 좋다. 내 아들이 승계받지 못해도, 그것으로 저 반란 괴뢰 정권에 대한 노여움과 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명명을 바꾸지 않는다. 폐하라 불리기도 바라지 않는다. 이것이 예거의 명이다.' 223년, 남산만큼 부푼 배를 안고 그녀가 말한 내용이지요. 달포 뒤, 그녀는 남자 쌍둥이를 낳습니다. 그것으로 휴식은 끝이었지요. 체사레는 다시 일어섭니다. 이마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어요.

체사레는 이번만큼은 전장에 나서겠다는 오리우엘라를 저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가 군사를 다져둘 테니 한 달 뒤에 오라 하지요. 오리우엘라는 그 약속을 지켜, 한 달 뒤 그를 따라 기세 좋게 출전합니다. 아니, 출전하려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또 임신했다는 사실을, 잉그레를 떠나려는 순간 알게 되어요. 이번에는 체사레도 의도치(?) 않은 일입니다. 의심스러운 시기에 그들이 관계를 가진 적은 단 한 번밖에 없거든요. 그것도 순전한 우연으로. 

오리우엘라는 자신의 몸이 저를 통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 와중, 돌연 체사레가 잉그레에 나타나지요. 그녀는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에게 벌컥 짜증을 냅니다. '난 스물넷인데 벌써 애가 넷이다. 못 해먹겠어. 나는 내 몸을 아끼니 죄렛따위는 안 먹을 거고, 당신이 해면을 쓰든 아예 날 포기하든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체사레는 알았다고 말하며 가만히 그녀를 노려봅니다. 오리우엘라는 항상 그렇듯 뭐야 하는 시선으로 그에 응대하지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쌩 돌아서 본디 용건이었던 것 같은 톨레도 백작에게로 가버립니다. 

아무튼 그녀는 이제 아기가 새로울 것도 없어서, 빡빡한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아가들만 있는 방으로 들어와요. 그녀는 답지 않게 엄마 노릇을 잘합니다. 물론 '여왕치고'지만요. 오리우엘라는 종종 아이 셋을 전부 껴안은 채 푹신하고 큰 의자에 드러누워 있곤 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녀는 그렇게 셋을 제 품에 안은 채로 느긋하게 솜 위에 누워 쉽니다. 한밤이라, 그녀는 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고롱고롱 잠에 빠져듭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평화롭지요. 그리고 오리우엘라는 한 새벽에 눈을 뜹니다. 순간, 눈살을 콱 찌푸려요. 누군가 제 바로 앞, 큰 침대 쪽에 앉아 있거든요. 

그녀는 그 사람의 정체를 깨닫고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혼냅니다. '체사레. 사람 놀라게 무슨 짓인가?' '저는 전하의 태에서 태어난 모든 왕손들을 공경합니다.' '당신도 절반은 섞였는데 과장이 심하군.' '이번만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전하. 혹 무례가 아니라면 이전에도 같은 경우가 있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오리우엘라는 그 명민한 머리를 가지고도 잠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하.' '뭐?' 그녀는 한 살짜리 큰 아이를 살짝 안아 옆 솜이불 위에 눕혀놓습니다. 태어난 지 백 일도 안 된 쌍둥이도 곱게 뉘여두고,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지요. '체사레. 다시 말해 볼래?' '저는 이번 전하의 아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혹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다면, 저는 이 아이들에 대해 오로지 왕손에 대한 경외감밖에 가진 일이 없으므로, 개의치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뭘 말해?' '왕손 저하들 중 저와 관련 있는 분은 몇 분이십니까?' '똑똑히 설명해라.' '제가 아버지이지 않은 자식들이 얼마나 됩니까?' 

오리우엘라는 그 순간 주먹으로 그의 뺨을 한 대 갈깁니다. 뻐억. 말 그대로 뻐억이지요. 그녀는 반쯤 고개를 튼 체사레를 바라보며 손을 툭툭 텁니다. '애들 깬다. 나가자.' 이미 때려놓고는.... 아무튼 그녀는 억지로 억지로 영 내켜하지 않는듯한 체사레를 방 바깥으로 끌고 나옵니다. 등 뒤로 문을 단단히 닫지요. '체사레.' '말씀하십시오.' '아비를 의심하나?' '의심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결코 전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하께서 제 씨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리우엘라는 자신을 그토록 안아대던 사람의 저 꼴을 보며 그저 어이가 없습니다. 

'하나만 묻자. 내 뱃속에 이 아이는 왜 우리 아이가 아닌 건데?' '전하. 저는 전하의 가임기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날은 그를 피해갔습니다.' '그게 항상 맞느냐? 당신은 멍청하기가 그 짝인가?' '좌우간 제 질문에 답해주십시오. 혹 더 있습니까? 있다면 후일 미라이예의 후계를 부탁드리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오리우엘라는 그 말에 두 방향으로 놀랍니다. 그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 가진 불안감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그리고 미라이예를 존속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렇게 둘이요. 그녀는 우선 후자에 대해 급박하게 묻습니다. '너 무슨 소리를 하나. 미라이예를 존속시키겠다고?'

'전하. 제 이름은 아직 체사레 카아 빌라레알 얀 미라이예입니다. 부정하시려면 저를 먼저 부정하셔야 합니다.' '잠깐....... 아니야. 나는 미라이예를 멸적시키려 했다. 처음에 나를 배반한 죄는 공을 세웠다 해서 사해지는 것이 아니지. 너는 내 유일무이한 남편으로 적법한 지위를 얻은 거다. 그 외에는 없어.' '전하. 저는 미라이예를 유지시킬 겁니다.' '기각한다.' '전하께 허가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살아 있으니 미라이예 역시 살아 있는 겁니다. 아무튼 혹 전하의 쌍생아가 우리 아이가 아니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후일 핏줄 문제로 골치를 썩일 생각이 없습니다.' 오리우엘라는 도대체 어느 방면으로 화를 내야할지도 몰라서 갈팡질팡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불 같은 화가 끓어오릅니다. 제 말에 어깃장을 놓는 체사레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이를 갈며 말합니다. 

'미라이예?' '예. 전하께서는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의 금석증에도 쓰여 있습니다. 오리우엘라 예거와 체사레 카아 빌라레알 얀 미라이에로요.' '그게 유일한 공증이라면 내 그를 파기하지.' '미라이예 계승을 인정하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너는 나와 혼인했다. 따라서 네 자식들은 곧 내 자식들이야. 왕가의 손이란 말이다. 미라이예에 넘길 수는 없다.' '저 아이들이 제 자식이 아니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금석증은 파기한다.' '그렇다면 저는 다시 혼인해 미라이예를 이을 수 있습니까?' '내 자식들이 전부 제 씨가 아니라는데 어떻게 아나, 네가 고자일지. 그리고 설사 네놈이 고자라 해도 재혼은 안된다. 미라이예는 너로 끝이다.' '일단 전하께서 확고하시니 금석증은 파기하고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금석증은 파기하지요.'

오리우엘라는 그 깔끔한 싸움의 마무리에 정말, 열여섯 그 당시만큼이나 화가 납니다. 자신은 사실 빈 말이었는데, 저쪽에서는 진심으로 이혼하자 나온 셈이니까요. 그녀는 그를 무시하고 아이들의 방 안으로 쌩 들어가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날, 여섯 십이공회에게 폭탄선언을 하지요. 체사레와 이혼하겠다고요. 물론 당연하지만 십이공회들은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잉그레의 금석증은 파기될 수 없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요. 미라이예가 홀몸이 되면 그가 가문을 잇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되거든요. 다른 귀족들에겐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요. 그저 부마도위로 저렇게 봉사하는 삶이 보기 좋은데, 대뜸 독립시키면 이제부터 미라이예까지 경계해야 하는 전하께선 어떡하고요? 옛주인을 문 개는 새주인도 뭅니다. 뭐 이따위 얘기가 왕왕 나옵니다. 

오리우엘라는 일단 그들의 논리에 수긍합니다. 그래서 금석증은 그대로 둬요. 그러나 이야기가 끝난 즉시, 체사레를 최전선으로 보내버리지요. 참, 그녀는 그를 보내기 전에 냅다 제안한답니다. '내 남편이 아닌 미라이예는 불안하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무니시팔 쪽으로 적을 옮기는 것이 어떤가? 그쪽에선 당신이 대를 이을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설 텐데.' '금석증을 파기하는 것과 제가 전하께 충성하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전하. 저는 저 멍청한 무니시팔에게 가느니 차라리 자결할 작정입니다.' 오리우엘라는 오랜 기간 그를 알아온 제 경험으로 그가 결코 빈 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 이마를 짚고, 우선 가서, 내가 명했던대로 하라고 그를 쫓아냅니다. 그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지요. 

오리우엘라는 그가 떠난 뒤 제 분노의 정체를 분석해 봐요. 화가 난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이것이지요. 나를 내 어머니와 같은 취급했다. 바로 이 자신이 핏줄의 부정을 의심 받아 - 거짓이지만 - 지금 이 난장에 이르렀는데 남편이란 놈팽이가 똑같은 이유로 자식을 의심하는 겁니다. 물론 이제는 어머니 쪽이 왕족이니 왕계에 상관은 없지만, 그녀의 오랜 분노는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미라이예 계승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녀가 왜 그에게 혼인을 요청했겠어요? 미라이예를 영영 역사 속에 묻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의 자식은 결국 그녀의 자식이고 그녀의 자식은 곧 이 나라의 왕손이니까요. 오리우엘라는 자신이 수세에 처했던 수 년 동안 저런 어마어마한 가문은 이 딤니팔 안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우엘라는 체사레 저 사람이 자신의 이런 속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쏟아붓고 갔다는 데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화도 안 내지요.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에요. 오리우엘라는 그를 보내자마자 그가 보고싶습니다. 한 대 치게요.

물론 그녀의 이런 의사와는 상관 없이 체사레는 최전선에 나와 즉각 선전포고를 때립니다. 잉그레 쪽의 전력도 이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어요. 게외보르트가 끼어들었으면 이건 이미 내전이 아니라 전쟁이니까요. 주섬주섬 전쟁이 터지고, 체사레는 첫 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해가 넘어가지요. 그것도 봄이에요.(224년 5월) 오리우엘라는 애 때문인지 그가 꼴 배기 싫어선지 전쟁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체사레는 세 번의 전승 뒤에 처음으로 휴지기간을 가지고.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합니다. 그는 지금 오리우엘라의 뱃속에 든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여왕이 누구와 아이를 가지든 남편은 보좌만 잘하면 되는 건데요. 그런데 자신은 순간적으로 그 자명한 사실을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낸 겁니다. 이것은 물론 애정 탓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체사레는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의 애정이란 종류가 항상 경외와 겹쳐져 있음을 압니다. 그가 오리우엘라를 보는 시선은 비길 바 없는 애정이지만, 동시에 제 위에 언제고 떠 있는 태양을 보는 시선과도 같거든요. 그가 미라이예 계승 문제에 애로사항을 가질 것을 알면서도 혼인에 수긍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태양에 악착같이 붙어 있기 위해서요. 태양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체사레는, 자신이 아이 문제로 폭발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때 생각한들, 지금 생각한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생각한들 화가 나기는 매한가지니까요. 다만 그가 후회하는 것은 흥분에 정신이 나가 미라이예 후계 이야기까지 끌고 들어온 것이에요. 그건 물론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그녀를 잘 설득하고 협상을 맺어 해결할 예정이었거든요. 이렇게 막 지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젠장. 물론 그래도 쌍둥이가 제 자식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엄청난 의심을 가지고 있고요.(미라이예를 물려 받는다면 이 둘 중 하나지요.) 첫째도 마찬가지고요.

체사레는 그 뒤 다섯 달 동안 잉그레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리우엘라는 묵묵히 명령만 내리고, 체사레는 그것을 받아 수행하는 식이에요. 무니시팔 쪽에는 아예 게외보르트 최고의 전략가가 나와 있습니다. 때문에 때때로는 전술에서 패하고 때때로는 전략에서 패하기도 하며 지겨운 일진일퇴를 반복합니다. 물론 그 와중 오리우엘라도 체사레도 서로의 생각을 안 한 날이 없답니다. 오리우엘라는 분노와 억울함과 서러움(뒤 두가지는 자각도 못할 뿐더러 스스로 인정하지도 않을 겁니다)으로 이를 갈고 있고 체사레는 배신감과, 제 왕에 대해 감히 그런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역겨움과 분노, 그리고 다시 어쩔 수 없는 순수한 배반감, 질투, 독점욕, 다시 자책, 분노, 엄청난 소용돌이입니다.

이성은 미라이예 가문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그녀와 논해야 한다고, 어쨌든 아이 아버지 문제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그는 소태를 씹는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말하지요. 그러나 감정은 다릅니다. 그는 거의 독점욕에 가까운 감정으로 제 왕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 왕이 자기 아닌 다른 신하의 '충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그녀의 갈라져나온 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신을 옆에 두고 감히 왕에게 접근할 생각을 한 남자를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더 솟을 곳이 없는 살의까지 부글부글 끓습니다. 이 사람은 그 아이가 자기 아이일 거라는 생각은 아예 확률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웃기는 일이에요. 아무리 오리우엘라가 해산하고 단 번밖에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한들, 밤에 그녀를 놓아준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전쟁터에 잠깐 떠나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아무튼 오리우엘라가 그를 배제하고 사생활을 누릴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냉정만 있다면 누구든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지요. 뭐 체사레는 냉정이 없으니 모르고요. 전쟁터에서 그녀의 무정한 글씨-명령-공문을 보면 가끔씩 정말 울컥 분노가 솟아 칼을 들지 않곤 못 배길 정도에요.

한편 오리우엘라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안고, 태교에 영 좋지 않은 가슴 속 불덩이를 품고 있습니다. 체사레 저놈이 괘씸해 살 수가 없어요. 자기가 언제 남자를 밝혔다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의심의 여지가 생기자마자 득달같이 제게 달려와 넌 부정을 저질렀으니 아이들의 아비를 밝혀라 하는 못난 꼴이라니요. 나를 얼마나 믿지 못했으면, 나를 모시면서 얼마나 불안해 했으면 사람이 저토록 추하게 변할까요. 그녀가 참지 못하는 점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체사레를 스스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눈길 한 번 안 주고 지나쳤을 텐데, '저' 체사레가 저러고 앉아 있으니 분노에 손이 떨리는 겁니다. 못난 놈. 그녀가 그에게 보낼 공문을 쓰다 펜을 부러뜨린 횟수는 이제 셀 수도 없어요. 오리우엘라는 체사레를 믿었습니다. 지금도 믿고 있어요. 그런데 체사레는 자신을 믿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어떤 부분이든 그녀는 그와 자신 사이에 불신이 섞여 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에 그녀는 - 아마 인정하지 않겠지만 - 굉장히 억울해 하고 있거든요. 아주 분통이 터져요. 자신의 신뢰를 받아놓고 속으로는 불신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었나 봐요. 면종복배가 따로 없습니다. 

또한 오리우엘라는 - 역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 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까지 해야 했던 그 멍청하고도 안쓰러운 어머니요. 그녀는 핏줄을 증명할 필요도 없는 자신이 어머니 같은 문제로 속을 썩이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딤니팔에서 가장 고귀한데, 따라서 내 자식들도 가장 고귀하며, 누구의 증명을 받을 필요도 없는데, 단 한 명의 떼쟁이 때문에 이렇게 감정을 소모하고 있어야 한다니요. 오리우엘라는 이 노여움을 잊으려 미친듯이 일에 몰두합니다.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요. 저런 여왕께서 도대체 어느 시간에 남편 외의 다른 남자를 들이셨겠냐 체사레 경은 좀 지나친 의처증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 의처증은 반가의 아내에게 보일 수 있을지언정 감히 여왕에게 드러낼 수는 없는 종류지요. 여왕은 남자 하나를 두든 둘을 두든 백을 두든 상관이 없고 배우자의 애교를 넘어선 질투는 치죄 받아 마땅하거든요. 

아무튼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집니다. 그토록 건강하던 오리우엘라는 홧병과 지나친 혹사가 겹쳐, 어느날 사흘이 넘도록 잠에서 깨지 않습니다. 십이공회는 덜컥 겁을 먹지요. 그들은 초조하고 불안해져 왕을 진찰하는 의원에게 모입니다. 의원은 겨우 오리우엘라를 잠에서 깨워두지만, 온 활기을 잃은 그녀의 기력까지 책임지지는 못합니다. 그녀는 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서는, 또 다시 쓰러집니다. 자고, 자고, 잡니다. 왕실 최고의 의원들이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그녀를 진료하지만, 그녀의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불안하게도 몇몇 의원들이 슬슬 조산의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리우엘라 역시 자신의 상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그것을 들은 뒤 내린 가장 첫 번째 명령은 이것을 체사레에게 알리지 말라는 명이었어요. 다들 그래도 배우자인데 하고 난색을 표하다가, 침대에 누워서도 목을 잘라버릴 기세인 오리우엘라에게 눌려 어정쩡하게 수긍합니다. 혹은, 수긍하는 체 합니다. 십이공회가 보기엔 저 아이는 분명 체사레의 아이입니다. 다른 누구의 아이일 수가 없어요. 불가능해요. 그런데 왕이 제 자식의 아버지와도 함께하지 못한 채 생명까지 위험할 조산을 견딘다니요. 체사레가 왕이었어도 위험한 왕비 옆에선 한 달 밤낮을 꼬박 새야 할 지경인데요. 그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리우엘라 몰래 체사레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전하께서 위독하시다. 피로로 인한 조산의 위험이 있으시다. 

체사레는 급신을 받자마자,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잉그레로 달려옵니다. 오스페다에 도착한 뒤에야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만 지금 상황에선 아무래도 좋아요. 체사레는 오리우엘라를 봐야 했습니다. 그녀가 없으면 자신은 지지대를 잃어버리고, 제 삶의 지지대를 잃어버리면 자신은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는 그처럼 예고 없이 잉그레에 들이닥쳐, 오리우엘라에게 소식이 전달되기 전에 그녀의 방으로 쳐들어갑니다. 

오리우엘라는 침을 맞느라 눈가를 팔뚝으로 짚고 있습니다. 그를 보지 못해요. 눈에 띄게 여윈 팔뚝이 살짝 떨리더니, 누군가 짓누른듯 침대로 내려갑니다. 오리우엘라는 눈을 꽉 감고 있어요. 잇새도 꽉 물려 있습니다. 너무 힘겨워 보입니다. 체사레는 잠시간 할 말을 잃고 섰다가, 부릅니다. '전하.' 돌연 그녀가 번쩍 눈을 뜹니다. 그녀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제 옆에 놓인 아무 쿠션이나 들어 그에게 잡아던졌습니다. 그건 그에게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체사레는 그때쯤 의원이 일을 마친 듯 하자, 그에게 빨리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그녀의 침대로 걸어갔습니다. 오리우엘라는 베개를 하나 더 집어 던집니다. 그것은 그의 팔뚝에 툭 맞고 떨어집니다. 그녀가 다음 것을 던지기 전, 체사레는 방금 전 의원이 앉아 있던 자리에 다다릅니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반복합니다. '전하.'

'다앙자앙 안 꺼져?' '이토록 편찮으신...... 모습이.......' '꺼지라고 하잖느냐!' '전하. 조산의 위험이 크다 들었습니다.' '닥쳐. 그리고 당장 이 자리에서 나가거라. 당장.' 오리우엘라는 그녀답지 않게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체사레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다 주먹으로 얻어 맞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나친 움직임을 한 결과로 윽 하면서 배를 감싸요. 끔찍한 고통입니다. 그녀의 이마에는 순식간에 땀이 맺히고, 그 잠시 동안은 그토록 증오스러운 체사레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체사레는 턱에 힘을 주며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깁니다. 오리우엘라는 어떻게 반항도 하지 못하고 아픈 배를 감싸며 그의 품에 떨어집니다. 나오는 말도 전부 신음뿐이에요.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 순간의 고통이 지나가자마자 자신이 그의 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요.

체사레는 그녀를 결코 놓지 않으려는듯, 가장 안정감 있는 자세로, 엄청난 힘으로 껴안고 있습니다. 오리우엘라는 그 힘에 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조차 없어요. 미친듯 화가 납니다. '전하.' '가라고!' '편찮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죽습니다.' '나가라 말했다! 스파알 경! 스파알- 읍!' 체사레는 무려 여왕의 입을 틀어 막습니다. '부르지 마십시오.' 오리우엘라는 여전히 그의 품 안에 꼼짝없이 구속된 채로, 발버둥 발버둥을 치고, 끝내 다시 배의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축 늘어집니다. 

체사레는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지요. 그는 그제야 오리우엘라를 품 속에서 떼내더니, 그제야 키스를 합니다. 그녀는 반항할 힘도 없어요. 체사레는 그간 참아왔다는 것처럼 그녀가 숨도 못 쉬도록 덤빕니다. 오리우엘라는 평소라면 신나게 뺨을 갈겨주었을 텐데, 온갖 진이 다 빠진 상태라 어찌 버르적거릴 수조차 없습니다. 체사레는 그처럼 다섯 달 동안 꽉꽉 짓눌러왔던 짧은 욕망을 푼 뒤, 피로에 반쯤 넋이 나간 그녀의 양뺨을 감쌉니다. 

'전하. 혹 산모까지 위험할 지경이라고 합니까?' 오리우엘라는 그 말에, 넋이 나간 줄 알았던 분노가 다시 돌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왜, 아이가 위험한 건 괜찮더냐? 네 아이가 아니니까!' '오해십니다.' 오해 아닙니다. '너는 정말 구제불능의 개자식이로구나. 나는 수간을 했고 내 새끼들은 전부 짐승의 씨를 받았어.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돌이키고 싶다. 네놈을 내 안에 들이는 것이 아니었어. 이토록 속 좁고 신뢰 없는 놈팽이인 줄 알았다면 결코 이런 방식으로 미라이예를 억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하. 저를 맞은 것은 오로지 미라이예를 억제하기 위함아셨습니까?' '그럼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 '전하.......' '너 설마 아직도 미라이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느냐? 미친 게로구나. 미쳤어. 잉그레를 배반했던 기억은 죄 지저로 파묻은 듯 하구나. 지금도 이토록 위험한 미라이예를 다시 돌려달라....... 미친 거지.......' '전하. 저는 지금 그 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중한 것은 전하의 건강입니다.' '내 아이 건강도 생각해야지. 내 아이이자 이 나라의 왕손이 아닌가.' '이미 세 분이나 계십니다. 제게 중한 것은 오로지 전하뿐입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려면 내 아이도 중하게 여겨. 티살레마, 바슐로와 지르젠티만 아낄 건가? 네 아이라고? 네 아이이든 아니든 무엇이 그리 중요해?' '전하.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문제는 아이가 아닙니다. 전하의 옥체입니다. 아이가 전하께 해가 된다면 즉각 제거하십시오.' 오리우엘라는 이 순간 마지막 제방이 무너져, 미친듯 화를 내며 체사레의 멱살을 붙잡습니다.

'네놈이....... 감히.......' '전하. 저는 전하의 건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미친놈....... 내 여기서 제안을 하지.......' '예?' '미라이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체사레의 엄지가 약간 아랫쪽으로 움직입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처럼 놀란 그를 노려보며, 짓씹듯 내뱉지요. '대신 영지는 오분지 일 이하로 축소할 것이며, 모든 사병과 재물도 마찬가지로 몰수하리라.'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대를 어떻게 이을지-' '이 아이.' 체사레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녀는 그가 나중에 딴 소리룰 하지 못하도록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조건이다, 체사레. 네 후계자는 이 아이다. 이 아이로 대를 잇지 않는다면 나는 어느 누구도 네 적장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알량한 미라이예도 끝장이겠지.'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 제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물론 오리우엘라는 이 헛소리를 무시합니다.

'전하.' '입 닥쳐.' '전하, 바슐로를 주십시오.' '시끄럽다! 용건 끝났으니 나가!' '전하께서 미라이예를 허하신 것은 천 번 고두해도 보답할 길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그에 조금만 더 아량을 베푸시어-' '이게 내 아량이다! 네 아이를 네 후계로 주겠다는데 무엇 문젠가! 시야를 가리는 것은 네놈의 알량한 편견일 것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저를 딤니팔 통일의 동반자 이상으로 생각지 않고 계십니다. 저는 깊이 상심했지만 그래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제가 아닌 다른 어떤 남성과도 잠자리를 가지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자명한 사실을 질시하는 졸렬한 인간이 아닙니다. 다만 그로써 전하께서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지셨다면 그 사실은 제게 공지되어야 합니다. 전하께서 제 아이가 아닌 아이를 미라이예의 후계로 지명하신 지금 시점에서는 특히나 더 말입니다. 전하. 이전의 왕손 저하들께는 기반 없는 편견을 품지 않겠습니다. 제가 잠시 그러했던 것은 제 눈앞을 가린 악독한 미몽 탓입니다. 그분들은 저희 아이가 맞을 것, 맞습니다. 다만-' '넌......' 오리우엘라는 눈을 꽉 감습니다. 

가관입니다. 저 남자. 남자들이 자기 핏줄에 대해 가지는 집착이 어처구니가 없고, 심지어는 치졸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하지요. '나가.' '.......' '당장, 나가.' '.......' '명령이다.' 그는 억지로 제 손을 그녀에게서 떼냅니다. 오리우엘라는 느릿느릿 침대에 기대며, 감정이 다 식은듯한 어조로 말합니다. '결정 기한은 보름이다. 아니, 그 전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마저 기각된다. 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확답해.' '전하. 지금 왕손을 보신다면 심각한 조산이 될 겁니다.' '팔삭둥이가 뭐 어때서? 내 건강한 몸에서 난 아이니 달수를 못 채운들 필시 건강할 것이다.' '아이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하의 옥체는-' '당장! 나가라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 걱정을 해 주는지 모르겠군!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닌가! 무뢰배가 아가씨 걱정하는 것에도 한도가 있지 이 미친놈이-' '전하. 어째서 저 때문입니까?' '지금 네 행동을 돌이켜 봐! 아비가 아비를 부정하는데 내 이가 안 갈리고 배길까! 태어나서 이토록 화를 내 본 적이- 네 탓이다! 네 어리석은 오해만 생각하면 속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 일에 매달린들 그 멍청함을 잊을 수 있겠느냐! 배신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이 얼간아! 정말 마지막 명이다! 나가!' 체사레는 무언가 말을 이으려는듯 입술을 꽉 깨뭅니다. 그러나 오리우엘라가 두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고 있자 뜻을 접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고 방에서 나가요. 

오리우엘라는 폭풍처럼 몰려왔다 다시 나간 그의 잔재에 이마를 꾹 짚습니다. 차라리 이 아이의 아버지가 정말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자기도 가끔 눈이 돌아갈 때가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그쪽에 별 관심이 없었고, 게다가 체사레가 이 사단을 벌일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부 잘라낸 거거든요. 오리우엘라는 그 자리에서 굳게 결심합니다. 건강하게 해산만 하면 남성편력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마고요. 아... 가정 파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체사레는 하루 종일 그녀 곁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짜증을 내면 내는대로 전부 받아 주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주고, 여하간 그녀를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떼 줄 기세입니다. 그러나 뱃속에 든 아이 이야기는 하지 않죠. 오리우엘라는 그가 여전히 이 아이를 자기 씨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노발대발합니다. 산모 건강에 굉장히 해를 끼치는 간병인, 남편이지요... 하지만 고집도 세서, 오리우엘라 침대 옆자리는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게 그녀의 홧병을 더욱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요... 오리우엘라는 그가 꼴도 보기 싫어서 하루종일 자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잠에 들어도 체사레가 가끔 짧게 키스할 때나, 배가 눌리지 않도록 돌려주는 것 등등 그의 손길을 몽롱하게 느끼고 있으니 그것도 별로 좋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도 안 지난 시점에 오리우엘라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됩니다. 그녀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성격이 아니라 큰 소리는 없습니다만, 얼굴이 새하얘선 몇 초에 한 번씩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습이 비전문가의 눈에도 잘 잡힐 지경입니다. 아이가 좀 일찍 나오려는 거에요. 의원들은 그 조짐을 보곤 식겁해서 들어오고, 잉그레식 금줄이 사방에 깔리고, 체사레는 그녀의 옆을 떠나지 않으려다 처음으로 키에아 여백작에게 엄청하게 혼납니다. 공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신데 어디서 감히 이 자리를 지키려 하냐고요. 체사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오리우엘라의 손을 잡습니다. 의원에게 물어보니 산모의 건강을 장담하기 힘든 상태라는 겁니다. 키에아 백작의 비난이 귀에 들릴 리 없지요. 오리우엘라가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그러다 갑자기, 그는 자신이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꽉 다물리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지나치게 반가워 오리우엘라에게 몸을 숙입이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결정해.' 체사레는 턱에 힘을 줍니다. '당장...... 지금 안 하면......' 사실 오리우엘라로서는 지금 안 하면 기한을 넘긴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데요, 정신이 하나도 없고 초조하고 걱정되고 미칠 것 같은 체사레는 그녀의 말을,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그녀가 죽어 안된다는 뜻으로 듣습니다. 뭐 그럴만도 하지요. 사방은 절박함에 수선스럽고 그 건강하던 오리우엘라 본인도 가까스로 정신줄만 잡은 채 제게 힘없이 말하고 있으니까요. 체사레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 와중에 오리우엘라는 또 까무룩 기절해요. 주변에선 전하 전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난리지요. 체사레는 자신이 몰렸음을, 이제 영영 결정을 번복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직감합니다. 그는 여전히 땀에 찬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습니다. 생이 전해지기라도 한듯 재차 그녀가 숨을 토해냅니다. 그는 고개를 더 기울입니다. 잠깐동안 격렬한 고민을 하지만, 오리우엘라가 제 앞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억누르고 말합니다. '예.' 그녀는 기절해요. 

체사레는 이번에야말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사흘 가까이를 꼬박 지새웁니다. 안쪽의 의원들은 계속 교체되고, 신음은 들렸다 안 들렸다, 시녀들이 계속해서 물이고 수건이고 미음이고를 나르는 도중 그는 반 기울어 벽에 기대어 있지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걱정도 지나치니 머릿속이 아예 탈색된듯한 기분이에요. 체사레에게는 오리우엘라가 태양입니다. 그는 그녀가 절명할 시 따라죽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 자살한 뒤 그녀의 절명을 기다려야 하나 고민합니다. 어쨌든 제 왕의 마지막 얼굴은 보고 가야 할 테니까 전자가 나아 보여요. 아마 오리우엘라는 자기가 가고 나서도 자식들을 보필하며 딤니팔을 통일하기를 바랐겠지만 체사레에게는 이미 그런 논리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야말로 제 가치관의 중심이었고, 시선을 잡아주는 방향추였거든요. 그녀가 없다면 딤니팔에 이토록 충성할 이유도 없어요. 물론 그렇다고 배반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전부 포기하겠지요. 금치산자처럼요. 아무튼 이렇게 사흘. 아이가 나옵니다. 딸이에요. 체사레는 아이 울음소리를 아이로 생각하지 않고 저가 오리우엘라를 볼 수 있는 종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로 갑니다. 오리우엘라는 양팔뚝을 모아 눈을 짚고 있습니다. 어깨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입술은 미세하게 움직이지요. 그는 덜덜 떨면서(이 사람 지금 서른 넷인데요) 그녀의 손을 잡습니다. 오리우엘라는 느릿느릿 팔뚝을 내려요. 그녀는 그를 살짝 봤다가, 무슨 표정을 보여주지도 않고 의원을 부릅니다. '아이.' 의원은 잠시 주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아 넘깁니다. 딸은 팔삭둥이라곤 믿을 수 없으리만치 건강하고 큽니다. 지난 칠십이시간 엄마를 괴롭힌 게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지요. 

그녀는 그렇게 아이를 한 번 바라본 뒤에야 체사레를 돌아봅니다. 그는 아이라곤 눈에 잡히지도 않는 듯 합니다. 오로지 오리우엘라지요. '전하......' '네 후계다.' 그는 사실 괜찮다 말도 없이 아이를 미라이예라 오금 박는 그녀가 야속해요. 그녀는 끝내 위로의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안 하고 전부 나가라 명합니다. 의원 한 명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남고, 체사레가 고집을 부려 보지만 웃음기 하나 없는 엄중한 명에 그 역시 끝내 물러나게 되지요. 오리우엘라는 아이랑만 열흘 간을 방에 있습니다. 그 뒤에야 유모와 함께 독립시키고, 서서히 서서히 기력을 회복해가지요. 체사레도 그쯤해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는 그녀에게 무언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오리우엘라는 그저 냉랭합니다. 

건강은 기막힐 정도로 빨리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다시 철야를 시작하지요. 체사레에게는 당장 다시 전장으로 꺼지란 소리밖에 안 합니다. 체사레는 우선은 그녀가 그토록 건강하게 회복되고 있다는 데 안심합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었나봐요. 그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미라이예의 지분 양보를 위해 서류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사람도 철야지요. 그처럼 서로 독방에 틀어박혀 자기 일만 하다가...... 결국 체사레가 먼저 그녀를 보기 위해 일어섭니다. 

주저없이 그녀의 집무실로 가는 와중, 그의 눈에 딸이 잠든 방이 잡힙니다. 체사레는 무언가에 홀린듯 그 방문 앞으로 다가갑니다.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마침내 무언가를 결심한듯 방문을 열지요. 방 안은 고요합니다. 정말 고요해요. 아이의 요람은 달이 들어오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유모는 잠시 방을 나선듯 하고요. 그는 천천히 요람에 다가갑니다. 딸의 입술이 슬쩍 보입니다. 그는 요람 옆에 섭니다. 아이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습니다. 아직은 아기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한참을 내려다봅니다. 미라이예의 후계가 될 여자아이입니다. 그는 무슨 충동이 들었는지 품 안으로 손을 가져갑니다. 손이 나왔을 때 그 자리에는 아주 짧은 단검이 있었습니다. 어떤 장식도 없는, 굉장히 간소한 칼날이요.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엄지 손톱 아래를 베어봅니다. 슬몃 피가 배어나옵니다. 체사레는 자신의 피를 자루 쪽으로 기울여 흐르도록 한 다음, 이제 그것을 아이에게 가져갑니다. 아이의 귓볼. 제대로 드러난 곳은 얼굴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귓볼에 칼을 댑니다. 그리고 아주 살짝, 베지요. 피가 보이지도 않을만큼 흐릅니다. 체사레는 그것을 노련히 받아 역시 칼자루 쪽을 눕힙니다. 아이의 얼마되지 않는 피가 또르르 굴러 역시 칼밑에 고여 있던 자신의 피와 섞입니다. 체사레는 그것을 뚫어져라 노려봅니다. 그리고 돌연 옆에 나타난 어떤 유리 잔에 기꺼워하며 그곳에 섞인 피를 담지요.

다음 순간, 그는 칼자루를 꽉 쥐곤 뒤로 물립니다. 그 옆에는 유리잔을 쥔 오리우엘라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타부타 말을 잇지 않고 그의 멱을 쥐고 방 바깥으로 끌고 나옵니다. 체사레는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그녀를 따라 방을 나서지요. 오리우엘라는 화를 내지도 않고는 그를 데카를로의 방까지 끌고 올라갑니다. 말 한마디 없이. 그는 제 앞에서 흔들리는 피 섞인 잔에 매 순간 이를 악뭅니다. 저것이야말로 제 의심의 결정이니까요. 피를 섞어 응고되면 같은 핏줄이다. 그 뻔한 전통을 실행하려 한 겁니다. 오리우엘라는 데카를로의 방에 그를 밀어넣습니다. 자신도 들어와요. 문은 부서져라 닫습니다.

체사레는 잠깐 침묵하다 그 스스로를 달래듯이 말하지요. '전하.' '칼 있지?' '예.' '자결해라.' '전하.' '아이 앞에서 험한 꼴을 보이기는 싫다. 그 아이를 인정한다 해놓고 뒤에선 이 짝이더냐? 할 말이 없다. 난 더 이상 너에 대한 기대가 없다. 널 죽이고, 전투는 내가 지휘한다.' 체사레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봅니다. 오리우엘라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것이 없습니다. 그는 말하지요. '예.' 순식간입니다. 체사레는 제 손에 쥐여 있던 단검을 돌려 자기 목에 내리꽂습니다. 엄청난 속도였어요. 그러나 찔린 사람은 그가 아닙니다.

오리우엘라는 고통에 입술을 꽉 깨뭅니다. 최근에 아이를 낳는 아픔을 느껴봐서 다행입니다. 칼에 손바닥을 관통당하고도 번듯이, 비명 하나 없이 서 있을 수 있으니까요. 체사레가 크게 숨을 삼킵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단검을 뽑아서 던져버립니다. 자기 옷을 찢습니다. 얼굴은 그가 평생 언제 그랬을까 싶은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습니다. '전하, 제가, 감히, 전하께,' '개자식!' '죄송합니다, 전하, 부디 손을-' '개자식! 개자식! 나쁜새끼!' '전하, 피가, 흐릅니다. 묶어야, 합니다.' 오리우엘라는 찔린 왼손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푹 숙입니다. 거친 한숨이 터져나옵니다. 체사레는 덜덜 떨면서 그녀의 왼손을 빼앗아갑니다. 손볼 쪽을 꽉 묶지요. 그가 죽을 정도로 내찌른 힘이라, 그녀의 손은 정말 우습게 관통당했거든요. 끔찍한 상처입니다.

오리우엘라가 자리에 주저앉자, 그 역시 따라 앉습니다. 그는 정신이 없는 채로 그녀의 상처에 입을 대었다가 쇠독에 알맞은 대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아찔해서 우왕좌왕합니다. 오리우엘라는 여전히 온갖 욕설을 내뱉으면서 팔목을 잡고 주저앉아 있는 상태고요. 체사레는 그 모습을 보다가 방금 전 자신이 떨어뜨렸던 칼을 다시 잡습니다. 그녀는 섬찟한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번쩍 듭니다. 그가 바닥에서 칼을 잡아드는 순간입니다. 오리우엘라는 버럭 화를 내지요. '칼 안 내려!' 

칼은 반쯤 올라가다가 우뚝 멈춥니다. 체사레는 그녀에게 손목이 틀어잡혀 칼을 떨굽니다. 오리우엘라는 칼을 저 멀리로 던져버립니다. '내가 여기서 시체를 두 구나 치워야겠느냐!' '전하....... 제 죄를.......' '입 닥쳐! 그렇게 아레아가 싫더냐! 그렇게 네 아이로 인정하기가 싫더냐! 그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전하......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아레아는 제 아이입니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인정을 안하고 있잖느냐!' '아닙니다. 전하. 오해십니다. 아레아는 제 아이입니다.' '이 개새끼! 망할 놈의 새끼! 차라리 죽어버리지!' '죄송합니다.' '왜 아직도, 너는 도대체, 체사레!' 체사레는 그녀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 투명한 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의아하다는듯 시선을 위로 올립니다. 그리고 얼어붙지요. 

'체사레! 너는....! 우리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나는 네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너도 그 사실을 ...... 알아....... 아레아가 다른 이의 아이였다면...... 나는 그렇다고 고해했을...... 것이다.......' 그 말은 그녀의 메마른 몇 방울 눈물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무게로 체사레를 후려칩니다. 

지금까지 오리우엘라는 오로지 아레아가 그의 아이라는 말만 반복했었거든요. 협박과 욕설과 윽박지름은 덤이고요. 그런데 이제 그녀가 처음으로 새로운 논거를 펼친 거에요. 나는 네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아이였다면 반드시 고백했을 것이다. 일견 보면 네 아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건 어감과 사람의 감정 문제니까요. 체사레는 그녀가 그럴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리우엘라가 자신과 관련된 사실에 있어 당당하지 못했던 적이 없거든요.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식인들 그녀가 무엇 상관했겠습니까? 어느 부분이 부끄러울 일입니까? 오리우엘라는 항상 당당해요. 필시 전부 알려주었을 겁니다. 전략을 말할 때처럼, 표정의 변화 없이 덤덤하게요.

'전하.' '너는.......' '아레아는 제 아이입니다.' '.......' '저는 전하를 믿습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뭅니다. '전하. 아레아는 제 아이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하, 저는 전하를 신뢰합니다. 제가 믿는 이는 세상에 홀로 전하뿐입니다. 전하께서 제 말씀을 믿어 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제 말 자체를 폐기해야 합니다. 전하-" "예거." 체사레는 호칭을 수정합니다. '예거.' '좋아.' '예거.' '잘했어.' '예거...... 예거, 예거.' 그는 그녀를 부르며 그녀 쪽으로 기웁니다. 뺨에 키스하지요. 오리우엘라는 가만히 있습니다. 체사레는 그녀의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핥은 뒤, 아직 산물기에 입을 맞춥니다. 입은 쉴새없이 예거를 중얼거리는 상태고요. 

오리우엘라는 그 호명에 오만가지 욕설로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속을 썩이고 썩이다 기어이 손에 구멍을 내고서야 벌벌 떨며 진실을 인정하는 모습에 화가 나거든요. 이전까지가 사선에 몰린 분노였다면 지금은 아예 마음 놓고, 그의 죄를 탓하는 분노지요. 체사레는 계속해서 무언가에 홀린듯 예거를 말하고, 오리우엘라는 욕설을 내뱉는, 그 기묘한 평형. 

한참 뒤 오리우엘라가 말합니다. '캄비에 가자.' '예.' '가야겠어. 전황은 괜찮지?' '예.' 그들은 이틀 뒤 알론조 캄비로 떠납니다.

오리우엘라는 7살 때 이후로 처음, 체사레는 17살 때 이후로 처음입니다. 그렇죠. 그들의 첫만남 이후로 처음 가는 캄비죠. 그녀는 캄비에 도착해, 우선 낮에는 체사레와 한 방에서 놉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그들은 캄비로 나갑니다. 오리우엘라는 눈으로 배경을 훑고는 옛날의 그 자리를 찾아요. 거진 17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첫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건 체사레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뒷꽁무니에 체사레를 달고선 일곱 살 때 자신이 섰던 자리를 찾습니다. 

그녀는 신발을 벗어던져요. 그리고 냅다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체사레는 느릿느릿 오리우엘라를 쫓아갑니다만, 물의 저항을 밀어내는 힘이 달라서 곧 속도가 맞지요. 오리우엘라는 예전 자신이 보골보골 빠졌던 것을 기억하고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체사레는 영문을 모르고 더 깊이 들어가려는 오리우엘라의 허리를 끌어안습니다. 그녀는 버둥거리다 그가 명치 선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움직임을 멈춥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기대에 차서 몸을 굽히지요. 몸도 마음도 다 큰 스물다섯 여인은 눈을 뜬 채로 물 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환희에 차서 빙그레 미소짓지요. 

체사레가 따라 몸을 숙였다가, 그는 그 자리에 붙박힌듯 굳고 맙니다. 오리우엘라는 그를 돌아보며 여전히 다가갈 수 없는 곳의 빛을 손가락질하지요.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가만히 있다, 영 자신을 믿지 못하겠는듯 물 바깥으로 나옵니다. 바깥은 여전히 고요한 밤이에요. 혹시나 해서 방금 전 빛이 있던 곳을 살펴보았으나 물 안에 광구가 있다는 기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소 당혹하여, 여전히 아래에서 빛을 감상하는 오리우엘라를 안아올립니다. 그녀는 푸르르 물을 털고는 불평하지요. '왜?' 

'빛이.......' '이제 보이느냐?' '있을 수 없는 빛이.......' '내가 스무 해 가까이 고민해 봤는데 저건 사람이 닿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 듯 싶다. 나도 가까이 가지는 않을 거야.' '예거. 저것은-' '이제 네게도 보이지?' '있을 수 없는 빛입니다.' '우리에겐 있어.' 다음 순간 오리우엘라는 다시 한 번 주저앉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체사레를 같이 끌어들였다는 점일까요. 그는 얼결에 다시 물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에게 꽉 안긴 모양으로 다시 한 번 빛을 손짓하고, 체사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불가능한 등불을 바라보지요. 그녀는 그의 의심스럽다는 얼굴이 웃겨서는 물 안에서 빵 터집니다. 그리고 물을 꿀꺽꿀꺽... 체사레는 그녀를 휙 들고는 물 바깥까지 끌고 나옵니다. 오리우엘라는 그에게 아이 모양으로 안겨요. 그가 자신을 그리 안아올릴 때면 꼭 어렸을 적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 듭니다. 웃기게도요. 그녀는 그처럼 스스로에게 터져서 뭍으로로 나오고도 계속 웃습니다. 체사레는 그녀를 내려두지 않고, 계속 제 품에 끌어안은 채 그녀의 웃음 섞인 울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십팔 년 전처럼 달은 밝고, 아이는 어엿한 왕이 되어 반란 수괴들을 치죄하고, 그 당시 보지 못했던 빛을 발견하고. 오리우엘라는 한참을 더 웃다가 제 풀에 지쳐 그의 목을 껴안습니다. 그는 조용히 숨만 쉬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녀도요. 그들은 그처럼 가만히, 한 명은 하늘, 한 명은 캄비를 바라보며 서(안겨) 있습니다. 잠시 뒤 오리우엘라가 말하지요. '여기서 나가면 함께 전선으로 가자.' '예.' '가서, 죽이자.' '예.'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안 가질 거다. 그러니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을 해도 되겠어.' '마치 이전에는 거리끼셨다는듯 말씀하십니다.' '몰랐나? 너는 네게서 검을 물려받은 살인자가 얼마나 컸는지 모르는군.' '저와 겨루어 보시겠습니까?' '물론! 장소는?' '침실.' '.......' '허락하십니까?' '나 다 젖었어.' '더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