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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이벤트 팬픽 특별 <버베나 봉오리> ClaireLyn 님 작품 딤니팔의 봄 햇살이 응접실 안으로 물결치듯 떠밀려들어왔다. 레아는 멍하니 제 손을 들어 그 햇살에 비추다 혼자 피식 웃었다. 여타 리베들과의 대단찮은 담소 시간이 끝나고 리베들이 꽃 찾아 나는 벌처럼 제각기 흩어진 후였지만 그녀는 드물게도, 아주 드물게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대낮의 고양이처럼 소파 위에 늘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단초도 참지 않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오지랖이라도 떨었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런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어깨까지 오는 옅은 머리채가 자주색으로 염색한 소파 위에 흐트러져 더욱 도드라졌다. 입만 다물면 나름 청순고결한 리베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한 것 같기도 어쩌구하는 앙히에의 이죽거림 그대로, 마치 귀족가의 영양이 잠시 놓아둔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 더보기
이벤트 팬픽 3 가네 님 작품 비공개입니다. 더보기
이벤트 팬픽 2 <새벽울음> Podi 님 작품 새벽울음 온갖 오물로 덧칠된 벽, 매캐하고 달큰한 연기가 흐드러져 새어나오는 금 간 유리창을 묵묵히 바라보던 발렌시아는 도로 시선을 물렸다. 분명 쉬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지금의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 해가 뜨길 기다리려면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 그대로 해가 떴다가는 잉그레는 한바탕 뒤집어질 것이다. 라퀼라에서 선잠을 자다가 그대로 끌려나온 발렌시아는 폐하께서 공을 직접 지명하시는 메모를 남기고 가셨다며 재차 당부하는 시종장의 염려를 뒤통수에 매달고 나와 뒷골목에 서있었다. 발렌시아는 더 이상 시선을 돌리는 일없이 묵묵히 발걸음만 옮겼다. 빠르고, 자로 재면 분명 한 치 어긋남이 없을 엄격함. 대나무의 불거진 마디. 뒷골목의 백성, 포주나 창부, .. 더보기
이벤트 팬픽 1 mmokysy 님 작품 마차에 내려 발이 땅에 닿았을 때 자연스럽게 올려다 본 시야에 거대한 왕궁이 나타났다. 젊을 적에 보고 20여 년 만에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장엄하게 사람을 짓누르는 궁의 화려함에 낯설다 못해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낀 채로 잠시 서있었다. “무언가 볼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닐세, 가지.” 오다가 모래라도 들어간 것인지 구두 안쪽이 까끌거렸다. 새로 산 기억이 아득해서인가 조금이라도 먼 거리를 갈라치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다. 모래들이 여기저기서 들어와 발 안쪽을 괴롭혔다. 애써 무시한 채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느릿하나 여유와는 거리가 먼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품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굳이 이곳까지 찾아와 일을 구하.. 더보기
ClaireLyn 님 <하얀 사막 위 검푸른 하늘이 피어> - '염희'에 바치는 글 ** 사실 '염희'의 진가는 작중 내내 단 한 번도 무타스 디무어의 시점이 나타나지 않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욜란다나 톨레도 경의 시각이 섞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발렌시아 시점으로 진행되고, 따라서 독자들 역시 발렌시아가 보는 시선대로 염희를 읽게 되며, 그렇기에 더더욱 발렌시아의 숨겨진 분노와 슬픔과 절망에 먹먹하게 동의하게 되니까요. ** 그러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은 화자가 옥희의 시점을 걷어내고 어머니와 손님 간의 갈등을 읽고자 하듯, '염희'를 읽은 독자라면 무릇 디무어는 어떤 생각으로 발렌시아를 대했는지 보고 싶어하리라 생각됩니다. 다름아닌 제가 그랬으니까요. ** 따라서 이 글은 정말 말 그대로, 염희라는 완벽한 그림에 굳이 삐뚤삐뚤하게 덧붙이는.. 더보기
ClaireLyn 님의 팬픽 열 두 살의 일이다. 하늘로 날아갈 듯 두 팔을 벌린 채 선 여인상들의 손 끝에서 푸른 물줄기가 뿜어나왔다. 선명한 청동빛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역동성. 라르디슈에서도 가장 고결한 존재들이 사는 생 로욜의 정원에 걸맞는 정교한 화려함은 귀족원을 드나드는 치들의 상투적인 찬사감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찬사가 와닿지 않았다. 하기야, 이런 곳에 '사는' 사람에게 그런 것들이 와닿을 리가 없다. "뤼 뤼페닝." 붉은 머리칼의 소년이 나른하게 고개를 들었다. 담록색 눈이 힐끗 그를 부른 자를 응시했다. 고작 열 두 살의 아이가 갖기에는 지나치게 무감동한 시선이었지만 두 사람 다 개의치 않았다. 라그랑주 뤼페닝 브느와 라르디슈 올 발루아. 한 당파의 수장 자리를, 그것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