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사합니다!

이벤트 서평 3


jaye 님 투고




자리잡고 펼쳐들면 떠날 수 없는 소설, <나무를 담벼락에 끌고 들어가지 말라>에 대한 짧은 말
_jaye



1. 
  <나담>에 대해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삼국에 걸쳐 상당히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면서 정교하게 얽힌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나담>의 인물 구성에 있어, 최대의 장점은 그 누구도 떠다니는 글자로만 읽히지 않는다는―장면의 필요를 위해 그 장면에서의 얼굴만을 가지고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요, 소설에서는 기본적으로 요청되는 미덕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그 당연한 기본이 갖춰진 소설은 꽤 희소한 편이다. 워낙 많은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그러하다. 더구나 작가의 머릿속에 정리된 설정을 독자에게 내보일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는 것 또한 녹록찮은 작업인 것이다. 모든 인물의 가치가 존중된다는 것은 주조연의 구별이 모호하다거나 강약이 불분명하다는 것과는 달라야 하고, 또 소설의 주된 서사를 덮어 가리는 곁가지가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나담>은 이러한 위험요소들을 잘 피하고 많은 인물들에게 고유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덕분에 독자는 그들 중 누군가를 어떠어떠한 전형의 인물군으로 묶어 기억하거나 다른 사람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작중에서 특정 인물이 언급되면 피상적으로나마 다음 전개 내지 분위기를 예측하여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으며, 인물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보다 능동적으로 작품을 소비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아주 완벽하게 처리되어 흠 잡을 곳 없이 무결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담>이 각 캐릭터의 개성을 잡는 부분에서 뛰어난 소설이며 결정된 성격을 유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하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받아들이는 사람의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무수한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작가가 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작중 등장 분량이 이해를 돕기 위한 서술의 절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캐릭터라면 개별 독자에게 오독(-이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보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적는다. 하지만 ‘잘못 읽는다’보다는 ‘다르게 읽는다’는 의미로 말하고 싶다.)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될 터이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독자가 어떤 특정 인물(주로 주인공)의 시각에서 소설을 읽게 되어, 그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다른 인물을 판단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다행히도 <나담>은 외르타 또는 발렌시아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단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위험으로부터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저마다 살아가는 중’인 캐릭터들은, 자기의 방식대로 살고 있으며 또 자기의 방식대로 타인을 읽고 받아들이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독자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목소리가 다양하여 한 가지 일관된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대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2. 
  여기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2부 리메이크 전후의 차이이다. 리메이크 전의 2부는 전장을 배경으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던 1부와는 달리 각국 지배자들끼리의 정략을 곁들인 상태에서 본격적인 로맨스의 시작을 알렸다... 달달하고 포근한 그 무엇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과연 2부의 출발과 동시에 로맨스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1부가 외르타의 재생을 향한 출발로서 지난 삶을 정리하고 박힌 쐐기같았던 로크뢰를 처분(?)했다면 2부는 외르타의 삶을 향한 과정으로서 새롭고 안전한 삶에 덤(!)으로 발렌시아를 안겨 줄 터이므로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튼 분위기를 바꿔 시작한 2부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시간상 1부와 바로 연결되면서 1부의 주 사건인 전쟁 이후 각국의 정세나 통치자의 행동 등 무척 공들인 것이 분명한 <나담> 세계관에서만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나담>의 강력한 장점인 정교한 세계관과 인물들은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희생하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에서 일어나기 쉬운 오류, 곧 모든 세계와 인물이 외르타를 위해 각자의 고유성을 양보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주인공으로서 외르타가 받을 만한 혜택들에 더해, 주인공이기 용인되는 우연한 요소가 덧붙여졌다. 예를 들면 외르타와는 전혀 접점 없는 생을 살아온 레아가 순식간에 외르타의 극력 옹호자 위치를 차지했던 것을 들 수 있겠다. 외르타의 지난날을 대강 들어 알며, 그녀가 망명해 온 딤니팔의 왕비이자 한 여자로서 레아의 연민과 배려는 물론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아이를 잃은 어머니’로서 외르타와 공감대를 이루는 레아의 모습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2부의 주무대가 되는 딤니팔(왕도 오스페다)의 중요 인물로서 매력 있는 캐릭터였던 레아가, 그제껏 <나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마스터 키가 되어 버렸다. 외르타의 이해자, 조력자, 인간적으로 유의미한 새로운 주변인이 되기 위해 인과를 찾기 어려운 요소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지쳐 있으며, 살고자 하는 외르타에게 이입되었던 일부 독자에게 레아는 반갑고 기적적인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홀로 가는’ 외르타를 알고 있는 이상, 결국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해자 내지 조력자란 외르타에게나 독자에게나 낯뜨겁고 당혹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외르타가 안고 있는 폐허에 가까운 상처란 결국 그녀 자신이 돌보아야 할 문제이지 외부의 구원으로 최종 결정까지 해결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독자로서 다행스럽고 만족스러운 점은 리메이크 후 이러한 문제가 상당히 교정되었다는 것이다. 의아한 부분이 전혀 없게 되었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러나 외르타와 발렌시아가 ‘나는 사랑하며 살아도 좋다/인간으로서 완전하다’는 결론을 타인의 일방적인 어드바이스 없이 스스로 찾아내고 얻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나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 과정을 속속들이 살펴보게 될 것을 믿을 수 있다. 한창 연재 중이었던 본인의 글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용단을 내려, 빠르게 달려가던 것을 멈추고 리메이크를 결정한 작가님께 감사와 지지를 표하고 싶다.

3. 
  <나담>은 여전히 연재 중인 소설이다. 그래서 <나담>의 큰 장점이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섣부르게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꽤 있다. 작중의 내용으로 예를 들어야만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를테면 언뜻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거나 단순한 삽화처럼 보이지만, 뒤에 가서 보면 허투루 쓰이지 않는 복선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게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고 <나담>의 열독자를 자처하는 주제에 틀리면 부끄러우니까...) 또 누구나 장점으로 꼽을 만한 매력적인 세계관 설정(그것도 작가님에게서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이라든가, 1부부터 현재 2부까지 꽤 변화가 있어온 중에서도 옛 시처럼 아름다운 표현을 가진 문체라든가 하는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네이밍 센스도!
  그 대신 아쉬움 하나를 적는 것은, 물론 <나담>에 대한 독자로서의 애정 때문이라고 먼저 말해둔다. 단점이라고 꼽는 것이 아니고 염려를 말하는 데 가까우므로, 어쩌면 기우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겠다.
  앞에서도 이미 문제삼았지만 리메이크 전의 2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조짐(?)이 다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과히 적극적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외르타를 배려하기에 나름의 명분을 갖춘 레아에게는 오히려 걱정이 덜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자에게 있어 친밀하고 매력적이면서 그야말로 엄청난 행동력을 갖춘 앙히에가 현재의 위치에서 엇나가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앙히에의 경우에는 로맨스의 장애가 ‘되기 위해’ 리볼텔라로 인한 외르타에의 책임감이 형에 대한 모든 과거와 감정(앙히에나 발렌시아나 형제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재단되지는 않는 것이다)을 압도해 버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있다. 비단 앙히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모든 인물들이 렌타커플의 지지자가 되기는 바라지 않으며, 꼭 그만큼 모든 인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방해자가 되기 또한 바라지 않는다.
  앙히에 아니라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독자 입장에서 <나담>은 쟤가 어떤 이유로 그럴 만하다고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만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캐릭터가 이야기 속에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이야기를 위해 변형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아무리 그가 안타까워(혹은 답답해서?) 애간장이 다 타 없어질 지경이라도 발렌시아의 변화하는 모습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