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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서평 1


Lazybird 님 (Ahrim 님) 투고



<반비님의 나무를 담벼락에 끌고 들어가지 마라> 서평
 
  나담은 굳이 분류를 따지자면 로맨스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로맨스라고 불리우는 장르문학쪽 로맨스와는 매우 다른 형식이다. 현재 한국 장르문학에서 로맨스로 출판되는 로맨스와 판타지 독자들에게 읽히는 그리고, 씌여지는 로맨스는 완전히 다른 장르로, 전자의 로맨스는 주인공들을 위해 필연적으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고 기승전결도 그 범위내에서 일어난다. 사랑의 이루어짐, 시련, 시련의 극복, 사랑의 회복, 글 안의 복선과 사건 등 거의 모든 장치들이 사랑의 완성을 위해 한 점으로 모이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로맨스는 흘러가는 시간과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사랑이 발생한다. 
  로맨스란 장르의 기원은 중세 기사문학과 궁정연애담이지만, 장르문학으로서의 로맨스가 그중 기사문학과 연애담의 결합 하에 연애담 측면으로 극도로 발달된 클리셰를 지니고 있다면, 판타지장르 하의 로맨스는 양자를 혼합하고 있는 측면을 지닌다. 나담은 후자로, 로맨스의 원형인 중세 기사문학에도 초점을 두는 계보 하에 있는데, 이는 반비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델라모레의 이야기나 오리우엘라의 이야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두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로맨스로서의 클리셰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라고 부르기 힘들다. 전자는 델라모레의 사망에서 로맨스와 상이하고, 후자는 로맨스라기보다는 오리우엘라의 일대기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약 델라모레의 이야기가 장르문학적 로맨스에 부합하려면, Happily ever afer가 되거나 델라모레의 죽음과 함께 공작이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면에서 죽었어야 한다. 모든 사건이 사랑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물론 공작이 그 이후엔 일에만 몰두했다는 첨언이 있긴 하나 이 부분에서 반비님의 서술은 너무 담담하다. 서술형태 역시 로맨스의 화법이라기보단 일대기의 화법에 가깝다. 그 이유는 나담의 작가인 반비님의 독서 취향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장르소설 로맨스를 많이 읽으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작가님은 작품을 로맨스로 기획했던 바, 이러한 작가님의 인식 및 장르적 특징에 의해 나담은 기사님과 공주님의 로맨스에서 멈추지 않고 서사성이 부여된 다채로운 작품으로 태어났다.
  연대기적 성격을 갖춘 소설은 자칫하면 설명조가 되기 쉽고 그 흐름을 따라감이 독자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나담 1부는 포타미외라는 한정된 장소와 외르타가 나타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약 세 달간의 한정된 시간을 장치로 하여 외르타의 인생과 발렌시아의 성격 등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중간 넣는 영리한 구도를 택하고 있어 독자를 작품으로 더더욱 끌어들인다. 이러한 영리함은 1편에서부터 나타난다. 1부의 시작은,
 
  "비 쏟아지는 막사였다. 칼로 칼을 깎아 만든듯 서늘한 남자가 의사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것은 오만이라기보다는 피로였다. 달도 돌보지 않는 한밤. 시체 껴안은 노곤한 대지가 물 삼키는 소리 면면했다.
  그리고 그 앞에 비투성이, 흙투성이, 생채기투성이, 머리 닿는 온갖 풀잎들 묻혀온 듯 정신 산만한 여자가 엎드려 있었다. 긴 머리 여윈 몸 미동도 없다. 지워질 듯 말라서 그녀에게 선명한 것은 몸에 두른 붉은 천 뿐이었다. 주변에 선 기사들 사이에서 불쾌한 헛기침이 거칠 것 없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여자를 끌고 온 자들도 즐거워서 데려온 것은 아닌 듯 했다. 짜증과 당혹과 산란함이 차분했던 사령부에 진창 뒤덮였다."

이다. 이 부분에서 남자의 이름과 여자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이 두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처음 남자가 말하는 것도 정확히 독자의 궁금증과 일치한다. "이건 도대체 뭔가." 또한 내용은 남자와 여자의 대립구도로 이어져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렌시아에게 1부가 끝날 때까지 외르타가 왜 라르디슈를 배반했는지 설명하지 않는 것도 또한 처음의 긴장감과 팽팽한 대립구도를 유지시킨다. 매우 훌륭한 소설적 장치이다.
  이 첫화에서는 또한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제시하여 최대한 설명을 배제하고 있다. 나담은 설명이 적은 편이고 정보는 대화, 에피소드에서 제시되며, 시간별 줄거리를 죽 이어나가기보다는 장면, 장면을 물흐르듯이 묘사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작중에서의 묘사와 문장들이 아주 뛰어나 읽는 즐거움이 있다. 각화마다 뛰어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위의 "칼로 칼을 깎아 만든 듯 서늘한 남자", "달도 돌보지 않는 한밤. 시체 껴안은 노곤한 대지가 물 삼키는 소리 면면했다.", "오래 전부터 한결같이 고민하고 있던 일. 라르디슈의 개새끼 둘. 반시간 늦게 태어난 개는 후일 비사의 적절한 응징을 받게 될 것이다. (중략) 반 시간 일찍 태어난 개는 그 나태함으로 발터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와 같은 재미있는 운율 맞춘 문장, 로크뢰와 발렌시아의 대결장면, 전쟁의 전투장면도 매우 생생하고, 심지어는 방 하나를 묘사해도 "화사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라고 한다.
  이렇게 뛰어난 묘사력에 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다. 외르타가 잉그레 발음을 잘 못한다거나, 왕과 귀족들과의 대화인데도 격식차린 일반적인 말투가 아닌 생동감있는 말투를 사용하고, 그렇지만 그런 말투하에서도 왕은 왕이며, 자카리의 악필, 외르타가 발렌시아의 집무실에 놓아둔 목걸이 덩굴, 오스트레반트 도르커 팔메, 일로너 데샴과 같은 언어, 롬, 롬을 하다 아버지를 보고 도망가는 레아, 무도회의 설정, 등장인물의 주량, 왕궁의 정원, 수반, 조각길, 마법, 왕의 오필라 그라벤호펜 세 번째 여섯단과 같은 군호, 심지어 이 군호는 리볼텔라가 외르타와 발터와 식사할 때 같이 만든 군호다.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유머감각 또한 매우 좋다. 오늘의 교훈을 "권선징악"이라고 왕이 외치자 후작이 "그것에 따라 세상이 움직였다면 딤니팔은 이미 멸망했을 겁니다, 폐하."라고 응수하고, 외르타의 경우, 공작을 잡으러 가는 상황에서도 미끄러져 넘어질뻔하며, 자신을 보고 "욜란다가 놀람과, 충격과, 슬픔과 서러움으로 엉엉 우는 동안 자신이 이곳에 오게된 경위, 너는 내 일과 상관없다는 당연한 위로, 만나서 반가운데 계속 울고만 있을거냐는 타박을 돌아가면서 설교했다", "그녀는 켈록켈록 기침을 했지만 우선은 이 아름다운 맛에 수긍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술을 마신다. (반비님은 술을 좋아하시는 것같다.) 발렌시아와 앙히에가 칼질을 하는 급박한 상황은 "술에 먹힌 금치산자"인 외르타가 칼날을 잡으려해 멎는다.
  게다가, 1부에서 외르타가 발렌시아에게 자신의 복수를 말하지 않는 것이 외르타 자신의 캐릭터, 문화적 배경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그야말로 놀랍다. 외르타가 복수의 이유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처하는 상황으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안타까움과, 그 이유를 알았을 때 보이는 발렌시아의 깨달음은 오해-해소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로맨스의 클리셰다. 그러나 나담에서 여주인공의 침묵은 여타 소설과는 다르게 캐릭터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가치관을 원인으로 한다. 여기서 나담에서 인물에게 부여된 특징이 캐릭터나 에피소드에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서사성 및 전개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읽어보면 줄거리에 중점을 두는 타입의 작가가 있고, 캐릭터에 중점을 두는 작가가 있다. 전자는 소설의 줄거리에 캐릭터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후자는 캐릭터에 따라 에피소드의 각 상황이 달라진다. 반지의 제왕의 경우는 전자라고 생각되며, 후자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영도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담의 경우는 위와 같이 캐릭터와 줄거리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둘 중 어떤 경우에도 치우치지 않아 소설이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외르타의 가치관은 또한 발렌시아와의 로맨스에 큰 역할을 한다. 발렌시아는 나담 전체에 걸쳐 사람을 모를 수 없는 천재이자 알 필요도 없었던 인간형으로 서술된다. 외르타가 발렌시아에게 자신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은 발렌시아의 입장에서 외르타에게 미스테리한 면모를 부여하고, 전쟁터라는 특수한 상황은 그에게 그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더 관심이 가며,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 혹은 시선의 시작을 의미하게 마련으로, 이 부분이 바로 나담의 로맨스로서의 시작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외르타가 처음부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면, 발렌시아와의 권력구도에서 하위에 위치하여 보살핌을 받는 인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는 매우 큰 약점이며, 발렌시아의 성격상 그러한 인물상에 사랑을 느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하에 서로를 대하는 과정에서 발렌시아가 드러내는 이해와 배려, 기사적인 면모는 그에게 남자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부여한다. 이러한 부분만 봐도 나담은 매우 탁월한 작품인데, 거기에 발렌시아가 십이공회에 합류한 것이 늦어 그녀를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발렌시아의 의문에까지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정에의 세심함 또한 엿볼 수 있다.
  외르타의 가치관에서 로맨스적인 장치를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르타가 발렌시아의 이해자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로맨스의 키워드는 결핍이다. 두 주인공의 결합을 통해 결핍된 부분이 채워지며 완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 모든 로맨스의 목표가 된다. 작중에서 외르타와 발렌시아의 실제 위치를 생각해보면 한쪽은 왕녀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망명 귀족일 뿐이다. 그 러나 발렌시아는 딤니팔의 최고 귀족인 미라이예의 머리, 공작의 위치에 있다. 이는 외르타가 발렌시아를 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나는데, "자신은 그 고귀하다는 왕가 두 곳을 거쳐 이리 망가졌는데 저 자는 홀로 고고히 서 일생을 저 차분함으로 살 것인가" (16회)나 "사실 저 사람은 어디에 무엇으로 있어도 항상 그 배경에 일순위로 얽히곤 했다. 전장에서는 댈 것 없는 살인자로, 서류 속에서는 침착한 공무 집행자로, 이와 같은 인공적인 빛 아래에서는 날 때부터 귀족적인 부유한 청년으로. 물론 그렇다 한들 그를 구성하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곧음, 그렇기에 무심함, 그렇기에 우아함, 그렇기에 매혹. 그렇기에 이런 뒤섞인 잡탕 속에서도 홀로 투명한 것이다."(109회)가 그것이다.
  이처럼 발렌시아는 나담의 세계에서 외르타에 비해 우월한 지위에 있고, 이에 비해 외르타는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이처럼 속이 뒤집어질 듯한 질시를 받고 있기도 하다."(109회) 와 같이  하위에 위치한다. 그러나, 두 인물을 잘 살펴보면, 외르타는 발렌시아에게 "처음으로 완승하지 못한 장소"(14회)에서 승리를 주어 발렌시아의 결핍을 채웠고, 극중의 언어로 "오스트레반트 도르커 팔메. 홀로 가는 길."을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 홀로 걸어가는 인간형이며, 1부의 끝에서는 복수도 완성했다. 결핍된 것은 오히려 발렌시아로, 그는 "당신도 짐작했다시피 저는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외르타, 저는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태생이 이렇습니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합니다. 이는 제가 타인과의 심정적인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앙히에는 이런 저를 견디지 못하고 공작가를 떠났습니다. 그것은 당시 어렸던 제게 상당한 충격이 되어 디무어를 만날 당시까지 보란듯한 흠결로 남아 있었습니다" (152회), 그와 이어지는 153회를 거쳐 그의 결핍을 고백한다.
  동생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그에게 외르타는 유일한 이해자로 그려진다. "누가 누구를 이해 못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너야말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해본 거니? / 불가능해. 일반적인 이해로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 그를 이해할 수 없다면 너도 그만 입 다물어. / 야. / 젠장, 만인을 헤아릴 수 있는 호인인 척, 전지전능한 신인 척 하지만, 앙히에. 너는 지금 네 눈 앞에 있는 나마저도 이해를 못하고 있어. 리볼텔라도 몰라. 아니, 아예 게외보르트 왕실 자체를 결코, 평생 헤아릴 수 없을 거야. 그건 너도 너희 형님도 너희 딤니팔도 모두 마찬가지다. / 무슨 상관- / 하지만 나는 그것에 불평하지 않아! 내 삶을 이해해 달라고 구걸하지 않아!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바라지 않아! 홀로 가는 길! 몰라?" (61회) 발렌시아를 만나기 전의 외르타와 앙히에의 대화는 발렌시아와 그녀의 만남을 예상하게 함과 동시에 그녀가 그의 이해자로 기능할 것임을 알려준다.
외르타는 수많은 고난을 겪은 메마른 인물이지만, 이처럼 발렌시아를 치유하기에는 딱 맞는 인간이고 그녀로 인해 발렌시아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이다. 153회는 1회부터의 기나긴 시간, 1.5부로 따지면 더 긴 시간 동안 나타나는  발렌시아의 결핍을 외르타가 채워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외르타의 이해와 동시에 발렌시아가 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물의 캐릭터를 조형하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나담의 재미 중 하나다. 소설에서 가가 나를 낳고 나가 다를 낳는 유기적인 연결은 소설적 재미를 더욱 배가시켜주는데, 나담은 캐릭터의 성격이 상황을 낳고 그 상황이 또다른 상황을 낳는 이러한 부분이 매우 잘 만들어져 있는데다가 그것이 계속 유지된다. 소설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것은 언제나 그 인물의 성격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깨지는 것은 작가가 그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인물들을 우겨넣는 상황에 주로 발생한다. 이야기가 재미가 있다면 소설이라는 특성상 용인될 수 있겠지만, 이야기에 재미를 부여하는 것도 작가의 재능이고, 재능이 있는 작가에게 이러한 상황은 발생하기 힘들다.
앙히에, 시누사, 톨레도, 자멘테, 브레타냐, 레아, 자카리, 욜란다, 발터, 리볼텔라 등 나담에 나오는 인물들은 허투르게 만들어진 인물이 없고, 각 캐릭터는 작중에서 설명이 아닌 에피소드와 상황으로 제시되는데 이 제시 역시 탁월하다. 그중에서도 외르타의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표현을 보면,

  "완벽한 논리적 도출이었다. 외르타는 서로 사랑하는 이 남매가 상대를 죽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으리라는 것을, 키 큰 남자가 늘씬한 여자에게 북어포처럼 얻어맞고 있는 우스운 상황 앞에서 선연하게 깨달았다. 리볼텔라는 외르타 자신에게 말했던 그 당연한 왕손의 각오로. 발터는 제 두려움으로. 외르타는 방금전 들렸던 제 멱을 정돈하며 그 둘이 툭닥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녹갈빛 눈이 빙그레 웃었다. 서로 그리워는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긴...... 발터, 미안. 그래도 난 널 죽여야겠다. / 알고 있어. 누님, 근데 나 죽으면 또 호의랍시고, 가장 강력한 적이었답시고 성벽 중앙에 걸지마. 민망하다. / 가장 구석에 눈에 안 띄게 매달아주마. 걱정 마라. / 나도 누님 주검엔 머릿쓰개 씌워줄게. / 오..... 그거 진짜 괜찮은데! 머릿쓰개!"
듀아네일 력 544년, 게외보르트의 제 18대 왕 막시밀리안 5세가 운명한다. 그 직후 왕자 둘과 왕녀 둘 간의 왕위 계승 내전이 발발했다. 내전의 전반부 반년은 후궁의 자식 둘을 현왕비의 남매가 척살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전으로 분류하기에도 민망할 일방적인 진압, 진짜 내전은 그 이후 세 해를 넘긴 남매 간의 다툼이었다.
클라우지우스 아벤트로트 라티스본 발터 틸 게외보르트 트리첸바와 클라우지우스 겐센 지클레 리볼텔라 틸 게외보르트 트리첸바의 내란은 동부 전반을 폐허로 만들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근 삼 세대 내에 싸움이 드물었으니 만큼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 되었다. 왕자가 궁지에 몰려 서부 해안까지 도주한 일이 있을 정도로 내전 초반에는 왕녀의 승세가 강했다. 그러나 그 사년의 마지막, 반 게르츠의 배반, 소모렛의 패배 등의 악재가 잇따름으로 왕녀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결국 소모렛의 패배 이후 두 달 열흘만에, 왕녀는 비사의 연회를 제안 받고 왕자에게 투항했다.
왕자는 흠 잡을 곳 없는 예우로 패배자를 맞아 일주일 간의 비사 연회를 베풀었다. 그 일주일이 지나고 왕녀는 숄렘 노트란트 성벽의 마지막 빈 자리를 채웠다. 여섯 개의 죽음 중 유일하게 얼굴을 가린 시신이었다. 패배자들의 주검은 수도에 매달려 썩어 문드러졌다.
듀아네일 력 547년 12월, 게외보르트는 제 땅의 열아홉 번째 왕, 발터하임부르겐 1세를 맞이했다."

  아래의 이 장면은 굉장히 잘 쓰여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는 남매지만, 서로 죽일 생각이며, 죽었을 때 머릿쓰개를 씌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여섯 개의 죽음 중 유일하게 얼굴을 가린 시신으로 매달린다. 대화체는 유쾌하지만 서술하는 문장은 딱딱하다. 위와 아래의 대조적인 분위기를 통해 홀로 걷는 길과 서로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외르타와 그 동기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선명한 이해를 독자에게 주는 장면이다. "서로 그리워는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인 것이다. 그리고 외르타는 또한 뻔뻔하다. "건강한 경이 심신미약한 나를 인정해 줘야지." 할만큼. 시누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 그분만큼 이기적인 사람을 제가 또 못 봤습니다."이와 같이  외르타의 이런 캐릭터는 아주 특이한, 나담을 전형적인 공주와 기사의 로맨스가 아니도록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다. 반면 발렌시아의 경우는 그 캐릭터의 조형방향이 외르타와는 다르다.
  발렌시아는 기사다. 전군의 수장, 미라이예 공, 품위 있고, 고귀하고, 고상하고, 침착하고,  "허리가 확 고꾸라지며 말의 후면으로 떨어"진 외르타를 잡아 내려 가뿐히 바닥에 세우며, "물러서라" 하고, 시누사의 눈으로 본 그는 "전 발렌시아 경의 칼이 제일 좋아요", "배울 수가 없는 칼인 건 압니다. 폐하께서도 사사받으시려다가 코 잡고 뒤로 넘어가셨거든요", "내 칼이 그 다음 순간에 어디로 갈지 알고 있는 검?"으로 검술의 천재로 묘사된다. "기어이 세 번을 다 채우"며 칼집으로 로크뢰의 머리를 치고, 외르타를 잡아 가려는 로크뢰를 니소르로 막고 "조용히" 말한다.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으로는 매우 전형적인 면모로 무엇을 더하고 뺄 것조차 없는 완벽하게 조형된 인물이다. 그 결핍조차 완벽하다. 발렌시아로 인해 나담은 로맨스이자 기사문학, 영웅담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캐릭터 조형은 이야기의 구성을 통해 더 빛을 발한다. 1부에서 외르타의 인생과 복수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가 펼쳐져 서사의 기본 뼈대를 잡았다면, 실제 외르타의 가치관과 발렌시아의 결핍은 1.5부에서 선명히 드러나며, 1.5부에 기반을 둔 발렌시아에의 이해는 2부에서 로맨스의 시작점이 된다. 또한 1부의 결과로 인한 외르타의 위기가 현재 진행 중인 2부를 끌고 가는 또다른 내용이 되는데, 아델에의 집착, 뤼페닝과 레스트왈의 위협, 발터의 대응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중심 내용 및 시간 전개에 따라 각 부의 성격은 매우 달라진다.
외르타나 발렌시아의 과거를 시간 순서대로 쓰지 않고 1부를 첫 시작으로 한 도입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멋진 구도다. 3달이란 한정된 시간, 전쟁터라는 극적 장소, 독자에게 궁금증을 던지는 도입부, 외르타의 침묵으로 끝까지 유지되는 팽팽한 긴장감과 대립구도, 외르타의 복수라는 적절한 동기부여와 그녀가 처한 극적 상황이 모두 모여 절정을 향해 달리며 읽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를 작중 인물에게 던진 후 문제의 원인과 그것의 해결을 위한 과정, 해결을 55회 안에 잘 정제하여 압축한 것이다. 발렌시아가 외르타의 동기를 내내 알 수 없도록하여 알았을 때의 카타르시스도 함께 선사한다.
  1.5부도 1부와 비슷하다. 1.5부는 1부와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 한정된 장소를 기반으로 각 인물들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첫 중심인물인 외르타와 발렌시아가 1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5부의 이야기들은 실제로는 오롯이 독립된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1부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편집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게 한다. 그런 점에서 1.5부의 이야기 배치도 어쩌면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1.5부에서는 외르타-앙히에-발렌시아-레아의 순으로 각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미 많이 나온 외르타의 과거 중 한 시점을 선택해 낯설음을 줄이고, 1부에서 그리 중요한 사물이 아니었던 브로치에 앙히에에게 받은 것이라는 사연을 부여하며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점을 보면 그러하다. 새로운 등장인물과 종전의 인물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외르타의 참혹한 현재를 먼저 이야기하고 아기 같았던 과거를 이야기해서 여행을 떠나는 외르타의 뒷모습에 안타까움을 배가시키고 브로치를 통해 새로운 인물인 앙히에를 매끄럽게 선보이며, 그 후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앙히에의 과거를 통해 2부와의 연결고리 및 리볼텔라와 발터라는 새로운 인물을 선보인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발렌시아의 과거인데, 이 순서에서 유추해보면 나담이 인물들의 이야기와 비중을 매우 단계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부는 외르타를 중심으로 하며 발렌시아는 외르타보다 한단계 낮은 비중이 주어진다. 그러던 것이 1.5부를 지나며 조금씩 무게 중심이 변화하게 되는데, 1.5부의 처음에서 전체 나담에서 차지하는 외르타의 비중은 1부보다 조금 더 올라가고, 리볼텔라, 발터, 앙히에가 신규 등장인물로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를 지나며 비중을 점차 늘려간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중심이 발렌시아로 넘어와 발렌시아의 이야기가 조금 더 늘어나고, 디무어가 다시 새롭게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중심은 딤니팔에 있는 레아에게로 넘어간다. 레아의 이야기는 전편에서는 거의, 아예 나오지 않았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 마지막 이야기의 구조는 1부와 1.5부에서 나타나는 외르타와 발렌시아의 이야기를 축소해놓은 듯이 실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을 사용하고 있기에 독자에게 마치 1부와 1.5부의 연상선상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전체적인 동일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 레아의 이야기는 그 배경상 이야기의 중심 배경을 전쟁터에서 딤니팔로 옮기는 역할을 하며 그 내용상 외르타의 과거(문제)를 완전히 치유, 해결하고 있다. 또한 인물 관계도상 레아의 위치는 발렌시아측 인물이므로 마지막 이야기가 레아의 이야기인 것은 2부의 중심인물이 발렌시아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1.5부가 없어도 1부와 2부는 연결되지만, 1.5부를 빼놓고서는 이러한 단계 구조에 따른 이해가 불가능하며, 각 단계를 모두 거친 후에야 나담이 더욱 완전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후 2부가 등장하는데, 각 이야기의 전개 과정 및 분위기가 그 중심이 되는 인물을 닮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도 머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2부는 발렌시아의 감정 부분에 중점을 두어 전개가 시작되는데, 그 이야기의 전개 과정 및 분위기는 발렌시아를 아주 많이 닮아 그 호흡이 매우 길고 완연히 로맨스에 비중을 두어, 외르타를 닮은 1부 및 1.5부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다. 복선을 착실히 뿌려 나중의 절정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으로 1부와 1.5부가 사건이 매우 적고 시간상으로도 짧으며 중심을 두는 등장인물들도 적은데 비해, 2부는 사건도 많고 주변 등장인물들에게도 충분히 이야기를 할애하고 있다. 이야기의 완결성 측면에서는 이렇게 상세한 서술이 필요한바, 1부나 1.5부보다는 조금더 완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뿌려놓은 복선들이 나중에 절정에서 터지는 걸 보는 기분은 어떨지가 정말 궁금하다. 이토록 착실하게 올라간만큼 더 높은 곳에서 화려하게 마무리 되리라고 작가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진짜 서평 : 1부의 속도대로라면 벌써 2부가 완결났어도 한참 전에 났어야하고, 외르타의 성질머리라면 벌써 진도가 나가고도 한참 전에 나갔을 것 같은데 발렌시아를 닮아선지 2부가 시작된지도 한참 지났는데 손은 한 두 번밖에 못 잡았고, (근데 진짜 그 손 잡은 날 백만 코멘터들이 들끓은 거 너무 웃기지 않았나요. 저도 함께 들끓었지만) 그리고 안는 것도 최근에 한 번정도 술취한 틈을 타서라니 발렌시아가 고자라니요. 거기다 약 180화만에 입도 아니고 겨우 볼에 키스라니 정말 통탄할 일입니다. 거기다 볼 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던데, 반비님 볼 물어본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글 읽고 실험해봤는데 침만 묻고 그렇게 좋지 않더라구요! 발렌 이빨은 토끼이빨인가. 나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평가받는 발렌시아지만, 테크니션과는 별개로 임포가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30세에 전쟁터에 나간지도 오래 됐으면 막 밤마다 불타올라 검 휘두르고 샤워하고 이래야하는거 아닙니까? 머 저리 순수한가요. 저정도면 순수한게 아니고 뇌가 청순한 거 아닙니까. 정말 안타깝고도 안타까워요. 제 속이 타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첫장면, 시누사가 엉망으로 표시해놓은 지도, 시누사가 천방지축 날뛰는 부분, 시누사가 로크뢰와 만나는 장면, 발렌시아와 로크뢰가 만나는 장면 두 개, 로크뢰를 죽이고 외르타의 이유를 알게 되는 장면, 머릿쓰개 씌워달라고 리볼텔라와 발터가 하는 대화 부분, 외르타를 위해 자카리에게 금 이만장을 내놓는 장면, 외르타가 레아에게 롬을 가르쳐 주는 장면, 발터가 블랑쉬와 함께 있는 장면과 블랑쉬가 같은 어수대와 이야기하는 부분, 술취한 외르타를 두고 하는 발렌시아와 앙히에의 칼질부분입니다.
  리볼텔라가 죽을 때는 진짜 울컥했어요. 로크뢰를 잡아 죽여주어야하는데, 또 앙히에는 어쩌고, 정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눈을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다시 안 읽고 언제나 휙휙 넘깁니다. 이 부분은 좋아하지 않아요. 아델 및 기타등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부분 중에 안 적은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서평 쓰던 중에 조아라가 닫히는 바람에 다시 읽을 수가 없었던 데다 출장을 가야해서요. 엉엉.